땅딛고 하늘보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그러지 않으면 하늘이 나를 찾으실 테니까!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그다음날도 나의 길을 가야한다.

철&신의 조약돌/서양철학

<접힘과 펼쳐짐>-이정우

영강풍음 2021. 9. 12. 23:34

책/라이프니츠가 주역을 만난다면…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의 세 번째 강의록 <접힘과 펼쳐짐>

이정우(41) 철학아카데미 원장이 지난해 가을 이화여대에서 행한 공개 강좌의 내용을 정리한 <접힘과 펼쳐짐>을 펴냈다. 질 들뢰즈의 철학을 강의한 <시뮬라크르의 시대>와 스토아 철학을 선(禪)과 접합시킨 <삶·죽음·운명>에 이은 세 번째 강의록이다. 이번 강의는 17세기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자연철학, 현대과학의 복잡성·형태변이·카오스모스 등의 개념, <주역>의 세계관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언뜻 탄착군이 형성되기 어려워 보이는 라이프니츠―현대철학―<주역>을 하나로 꿰어 강의한 의도는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드러난다. “과학은 어린아이 눈썹 같은 초승달, 구미호의 미묘한 웃음 같은 그믐달, 낮에 나온 외로운 반달, 대지를 환히 비추는 보름달… 이 모든 것을 결국 반지름 얼마, 무게 얼마인 돌덩어리로 환원시킵니다.”
철학의 개념이나 수학의 공식으로 환원시킬 때 세상의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모습은 사라진다. 지은이는 이를 “과학적 환상”이라고 부른다. 세포를 잘 설명하면 인간을 다 알 수 있고, 원자를 완전히 파악하면 분자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그런 것이다. 과학적 환상에는 “매끈함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다. 그것은 “복잡하고 울퉁불퉁한 것을 어떻게든 매끈하게 정리하고 환원시키고 싶은 욕망”이다. 그는 “우리 삶이 울퉁불퉁하면 바로 그 울퉁불퉁함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지, “그 울퉁불퉁함을 매끈하게 환원시키는 것인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매끈한 이론을 얻기 위해 자연을 재단한다면 그것은 행인의 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잡아늘인 프로크루스테스의 오류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프랑스 현대 철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자연에 맞추기 위해 이론을 바꿔야지, 이론에 맞추기 위해 자연을 바꾸지는 말라”고 말한다. 구체적 삶의 해명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 지은이가 자연철학을 피해갈 수 없는 까닭은 이런 데 있다. 프랑스 철학자 만델브로의 어법을 빌리면, 지은이는 “현실의 울퉁불퉁함을 자연철학으로 다듬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철학을 현실에 맞게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라이프니츠의 자연철학을 ‘종이학’이라는 이미지로 요약한다. 종이학은 열댓번 접으면 만들어지지만 세계는 수만·수억번도 넘는 무한한 접힘으로 이뤄진 종이학이다. 물론 종이학에서도 어떤 부분은 안쪽으로 접혀들어가 보이지 않고 다른 부분은 바깥으로 드러나 머리나 날개 또는 꼬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런 세계에서 원자와 분자, 세포와 몸은 어느것이 다른 것을 대변할 수 있는 우월함을 지니지 않고 그저 동등한 접힘으로 형성된 주름일 뿐이다. 지은이는 종이학과 같은 라이프니츠의 자연철학이 어떻게 현대 자연과학의 복잡성, 형태변이, 카오스모스 등의 개념과 만나며, 나아가 <주역>의 세계관과 만날 수 있는지를 구어체의 평이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지난 98년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그만둔 뒤 자유로운 강의와 연구활동을 펴온 이 원장은 최근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철학아카데미(02-722-2870)를 설립했다. 철학 아카데미는 왜곡된 교육현실을 인정하고 거기 안주하는 대신, “더 많은 이들에게 ‘철학하기’의 참의미를 전하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지난 10일 개강한 이 아카데미는 세개의 전문 강좌와 다섯개의 일반강좌를 열어놓았다.

출처:

이정우 - 접힘과 펼쳐짐(2001)(출처:)

이정우 교수 강의록,  『접힘과 펼쳐짐 ( 라이프니츠, 현대과학, 역 )』2000.

                                                                         요약, 발제자 : 남궁 효(2001.6.11)

제 3 강 : 주름                                                      

∮13. 현대사상에서의 주름

자연철학적 맥락에서 주름의 개념 정리, 주름의 개념은 사변의 영역이다.

프락탈 이론을 통해서 라이프니츠의 주름 개념이 과학적 영감의 원천이되고 있다.- 만델브로

들뢰즈 『주름』(1988) 이 나온 후 독특한 미학 사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14.  탄성의 문제

. 주름 개념이 탄생하게 된 과학사적 맥락은 탄성의 문제이다.

. 원자론의 탄성 개념 : 원자란 부분이 없는 완벽하게 단단한 존재로 쪼개질 수 없으므로 충돌시 어떠한 변형도 생길 수 없다. → 물체의 방향과 속력이 순간적으로 변한다.

. 라이프니츠의 탄성 개념 : ‘모든 물체는 그 안에 부분을 가지고 있다.’ = 모든 사물은 무한한 중첩 구조로 되어 있다. 충돌 → 물체의 변형 → 반발력 (탄성) (99쪽 그림)

. 모든 운동은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progression ) = ‘점진적’ 운동

. 문제점 - progression의 한계?

 

∮15. 주름

. 모든 존재는 그 안에 무한히 많은 다른 부분들을 담고 있다. = ‘주름’(le pli)

《 라이프니츠의 주름 구조 》

. 어떤 물체도 탄성을 가지지 않을 만큼 작을 수는 없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 사과와 사과 상자의 비유

. 라이프니츠의 세계관 : “종이학의 세계”

. 주름의 개념 = 접힘의 개념을 포함. = 특이점이 존재

. 사물의 복잡성은 그 사물이 더 많이 접혀 있다는 뜻이다. (종이 비행기 -→ 오리 → 종이학)

“세계는 무한히 접힌 주름이다.”

 

∮16. 접힘과 펼쳐짐

. 각 사물들의 차이는 얼마나 많은 주름을 접고 있는냐에 있고, 현실적 차원에서는 그 잠재적 특이점들(주름)이 얼마나 현실화 되고 있는냐 하는 것을 뜻한다. → 고등 생명체

. 표현 (펼쳐짐) = 잠재적 특이점들이 이 현세계에 나타나는 것 ( 물질적 과정 = 신체적 차원 )

. 인간 ; 다 같이 잠재적 주름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펼치는 것은 다 다르다.

→ 원칙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성불(成佛)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시공간의 차이와 노력의 여하에 따라 다를 뿐이다.(라이프니츠의 신학적 구도를 벗어남)

. “현대 사회는 자기 표현의 기회가 증대된 사회다”(군주제 → 대중 사회) =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주름을 펼 수 있는 사회, 그러나 허망한 말이다. ∵ 주름을 펴기 위해서는 늘 돈이 필요하니까(자본주의 사회)

. “ 네 꿈을 펼쳐라 ” --- 네 안에 주름잡혀 있는 특이성을 네 몸에, 네 현실에 구현하라

. 접힘과 펼쳐짐의 존재론은 자연의 맥락과 문화의 맥락에서 동시에 성립한다.

. 구조주의 사유 양식은 우리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조건/장을 드러냈으나 삭막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존/내면의 파악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주체철학으로 되돌아감은 역사의 후퇴이다.

 

이정우의 이론 철학

  1) 보이는 것 (현실) ---- reality --- 표현(表現) : 담론학

  2) 보이지 않는 것(실재) - reality --- 주름  :   형이상학/ 자연철학

    ( 구조주의 양식을 넘어서는 자연철학의 작업 )

 

. 표현 = 관계맺음 (타자와 함께 있음) = 열림  ∴ 우리는 삶을 예술작품처럼 살 필요가 있습니다.( 삶은 예술이다. )

  만남 = 아름다운 사람, 거장, 극미/ 극대의 세계,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 - 이 모든 만남이 곧 펼쳐짐이자 표현이자 열림입니다.

. 접힘 / 주름 개념 (111쪽 그림)

(a)                            (b)                             (c)

. 인간에게 특이성이 많다는 것은 더 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생물학적으로 더 고등한 지는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는 그런 인간들 때문에 세상은 피곤해진다.

. 힘과 주름의 관계

특이점들은 논리적으로 존재한다. → 힘은 그것을 현실화 시켜 준다.

인간에게 힘이란 특이성을 현실화시켜주면서, 또한 새로운 특이성을 창조해내는 조건이다.

 ∴ 힘은 실재와 현실을, 주름과 표현을 매개해 주는 존재이다.

기(氣)와의 관련성 - 기는 우주의 궁극적 요소이며, 힘이자 물질이며, 리(理) 개념도 포함한다.

 

∮17. 전성설과 후성설

. 생물학에서 생식의 문제 - - - 라이프니츠의 전성(前成)설 ;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각 생명체에다 후에 그 생명체가 태어날 모든 생명체들을 이미 넣어 놨다는 이론.

. 재생의 개념 - - - 폰 바에르, 후성설 ; 생명체라는 것은 완성된 형태로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중에 발전되어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

( 수태된 난자의 성장 과정 - 계속 주름이 잡혀서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으로, 끝없이 접혀 종이학이 되듯이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한다.)

. 라이프니츠의 시대에 고유한 의미의 생물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무기물까지도 주름의 논리로 파악하는 사람이다. → 라이프니츠의 전성설은 잘못되었으나, 주름의 개념은 매력적인 형이상학적 가설로 남아 있다.

“살아있는 물체는 동물의 영혼에 해당하는 두드러진 완성태를 가진다. 그러나 이 살아있는 물체의 부분들은 다른 생명체들 , 즉 식물과 동물들로 가득차 있으며, 이 식물과 동물들 또한 각자의 완성태나 두드러진 영혼들을 가지고 있다.”

 

. 욕망의 개념 -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거의 무한에 가까운 주름을 내포하고 있다. 그 주름을 펴는 힘이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적-결정론적 맥락에서의 ‘자생성’과 인간적-역사적 맥락에서의 ‘욕망’을 구분해야 → 라이프니츠를 벗어나 자연철학에서 인간존재론으로 넘어간다. (스피노자를 볼 것)

 

∮18. 무한히 주름잡힌 특이점들

. 대부분의 뛰어난 이론들은 독창적인 가설과 실험적 밑받침의 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바슐라르의 변증법) 형이상학적 상상력 → 가설 → 과학적 사유를 끌어당김 → 과학의 발달

. 생명 현상과 ‘프로그램’ - 유전자 내 핵산 안에 존재하는 프로그램 ( DNA염기) 구아닌, 시토신,티민,아데닌 :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요소들이 계열화되어 일정한 생물학적 의미를 형성합니다. 이 명령을 RNA가 수행하고, 그것을 DNA가 잇고, 다시 단백질이 그 명령을 수행하죠

. 현대의 기계론 ; 물질-에네르기, 정보로 구성됨(유전자). 정보를 떼어 놓으면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탈물질 = 형상, 리(理)에 가까웁다./ 정보 = 코드 ---> 구조주의 인간과학과 현대 생물학의 유사성 ; 프로그램/정보 = 구조/장, 이 장의 선험적 조건 위에서 물질들이 조직된다고 할 수 있다.

. 프로그램, 정보, 명령은 형이상학적으로 볼 때 무엇일까?

 명(命)의 하나하나의 요소를 사건이라고 본다. ( 탄수화물 A를 태워라, 곱슬머리 만들 요소를 합성하라) → ‘생명’ = 잠재적 사건들의 총체. 생명체 안에는 이렇게 잠재적 사건들의 총체가 접혀 있고, 각 생명체는 그 사건들을 하나하나 펼친다.

요컨대, 생명체란 물질-에네르기와 정보의 집합체이지만, 더 심층적으로는 조직화의 원리들(=명령들)이 무한히 주름잡혀 있고, 그렇게 주름잡혀 있던 잠재적 사건들이 펼쳐지면서 신체를 통해서 현실화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잠재적 사건들의 총체 = ‘완전 개념’ / 물질은 구조적으로 파악하면, 형상, 완성태, 프로그램, 정보, 명령, 완전 개념 등이 되고,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는 존재는 힘/ 에네르기 이다.

. 기(氣) =  물질-에네르기   

 리(理) =  기를 조직하는 형상, 정보, 완전 개념 / 순수 사건들, 특이성의 집합체, 논리적인 주름

 특이성이 실현되는 것은 바로 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잠재적 특이성들이 하나하나 실현되어가는 과정, 존재의 문이 열려가는 과정, 사건들이 계열화되고 물질/신체에서 현실화되는 과정, 이것을 도(道)라고 부를 수 있다. ∴ 우주의 모든 형태의 접힘-펼쳐짐들은 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파악한 도들은 무한의 도의 한 실타래일뿐, 이것이 ‘道可道非常道’의 의미이다.

(저자는 동북아 사유와 현대 과학을 비교하면서, 새로운 자연관과 인간관을 제시하고자 한다.)

 

. 힘 개념은 자연철학과 형이상학을 이어주는 개념 (제 2강에서 자세히 다룸 - 90쪽)

 

형이상학적 힘 본래적-능동적 힘
 (영혼, 형상, 완성태)
본래적-수동적 힘
 ( 투과불가능성, 저항, 질료)
자연철학적 힘 파생적-능동적 힘
(운동 에네르기, 위치 에네르기)
파생적-수동적 힘
(투과불가능성, 저항, 현상)

. 라이프니츠에게 영혼은 하나의 실체임. 라이프니츠는 영혼과 완성태를 동일시하고, 실체적 형상, 본래적-능동적 힘과도 동일시 합니다.

 ex. 코끼리의 형상 : 탄생 - 성장 - 완성태(궁극적 모습)=프로그램, 설계도(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가능태 ; 완성태로 나아갈 “수 있는” 무엇이며,/  현실태 ; 완성태로 “나아가고 있는” 존재

           가능태와 현실태가 라이프니츠의 에네르기가 된다.(위치 에네르기, 운동 에네르기)

→  라이프니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뿌리를 두고, 당대의 물리학을 받아들여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려고 했음.

. 영혼 개념이 탈사물화된 것은 칸트와 멘드 드비랑 이후, 의식, 자아, 주체, 마음 등을 탈사물화해서 보는 철학에 익숙해져 있음. 그만큼 자연과 인간이 멀어진 것. 그리하여 자연은 조작, 가공하는 물질 정도로 이해되고, 인간은 터무니 없이 붕 떠서 전능하지만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 → 현대 철학은 오히려 영혼을 사물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물체화와 다름)

 

☞ 인간을 자연과 통합하되 인간 존재에 대한 섬세한 포착을 놓치지 않고 포괄할 수 있는 사유로 ,

즉, 우주와 인간, 역사를 통일적으로 바라보는 큰 틀을 제시해야 ==> 기(氣), 기학의 재건이 필요

 

∮19. 복수성, 힘, 주름

. 라이프니츠 자연철학의 핵심원리 → 세계는 복수적이라는 것, 세계는 살아있으며 힘을 내포한다, 그리고 무한 누층 구조로 되어 있다.

. 환원주의 거부 = 현세계의 현실을 파생적인 것(그림자)으로 보기 거부

※ 궁극적인 실재는 없다. 그냥 이 세계가 궁극의 실재이다. 실재는 이 세계의 표현들이다.

현실과 실재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실재나 현실이나 모두 전체의 주름잡힌 한 단면일 뿐이며, 단지 우리에게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현상을, 현실을, 감성적 언표들을 사건과 이마주들을 사랑하라!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층위다. / 그러나 동시에 이마주의 표피적 차원에 머물지 말고 실재를 보라!  <중용의 철학>

.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포함해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얼굴들은 세계의 상이한 측면들일 뿐이니까. 현실과 실재를 이어주는 것, 세계를 주름과 표현의 생동한 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힘이다.

 

 

독후평(讀後評) :

 

 1. 라이프니츠의 주름 이론으로 현실(보이는 세계)와 실재(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시키고, 그 둘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접혀져 있는 것이 펼쳐지는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궁극적 실재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 현상 가운데서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현상을 소홀히 대할 것이 아니라 주목하고 사랑해야할 소중한 세계이다. 그러나 거기에 빠져서는 곤란하며 드러나지 않은 무한히 접혀져 있는 세계(실재)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잘은 모르지만 플라톤 이래로 현실과 실재를 나누고 실재를 궁극의 어떤 것으로 파악하고 이해해 왔던 서양철학사의 주류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양적, 불가적 세계관과도 닿아 있는 느낌이다. 현대사회의 주류 철학의 오류와 편벽됨을 해소할 탁월한 천재적 관점이다.

 

 2. 접힘에서 펼쳐짐으로 나아가는 것은 힘/에네르기에 의해서이다. 라이프니츠는 물리적인 힘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힘을 내포하고 있는데, 영혼, 형상, 완성태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라이프니츠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힘 개념과 근대 물리학의 힘 개념을 종합시켜 전통과 근대를 접목시키는 위업을 이루었으나, 개념 상의 혼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이런 혼동된 개념이 당대인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주류 철학계에서 밀려났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화이트헤드가 그러했듯이 전통과 현대를 담는 새로운 개념-개념어를 만들어 내야 하지 않았을까.

 

 3. 이정우 교수는 동북아시아 전통 사유와 현대 과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자연관과 인간관을 제시하려는 웅대한 비젼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임에 틀림이 없으나, 너무 쉽게 氣와 리(理), 그리고 도(道)를 말하고 있어서 우려된다. 물론 이 책이 강의록이고 아직 다 읽어 본 것이 아니어서 확정적인 견해를 낼 수 없으나, 적어도 현대 과학과 동북아 사유의 즉각적인 대입은 삼가야 할 것이다. 좀더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거나 타인의 연구 성과라도 인용하여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동안 중국철학과 환경이론을 공부하면서 막연하게 고민해 왔는데, 한면회 교수의 기철학적 환경론에서도 느겼듯이,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4강 복잡성

 

∮20. 부분 속의 전체

. 프락탈 구조 :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가 있는 구조/ 부분이 전체를 ‘반영한다’/ 대우주와 소우주

           인간과 우주가 구조적으로 유비적이다. (‘一卽多 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念卽是無量劫’)

. 데카르트는 이러한 사고를 대나무 쪼개듯이 논박, 유사성을 통한 존재의 등식을 동일성과 차이의 체계로 대체하였다. 

. 라이프니츠 ; 이러한 생각을 일정한 철학의 높이에서 명료화하였다.

. 부분 속의 전체 라는 주제는 주름 개념과 연관된다.

. 복잡성 개념 ; 더 나눌 수 있음, 부분을 가짐, 타자를 내포, 특이점이 많음

. 무한의 문제 ; 라이프니츠가 평생 고민한 문제

 

∮21. 프락탈 구조

. 브누아 만델브로 : fractal < farctus(조각, 파편) 『프락탈 대상들』(1975), 『자연의 프락탈 기하학』               (1977) → ‘부분과 전체의 상사성’

. 코흐의 눈송이

. 프락탈 이론은 컴퓨터 시대의 기하학이다.

. 과학과 기술의 관계 ; 누가 더 먼저인가?

. 프락탈 도형 : 지에르핀스키 개스킷, 나무와 폐의 프락탈 구조

. 프락탈 도형의 특징 ; 끝없이 주름잡혀 나간다. (우리 몸의 부피는 일정하지만 표면적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22. 일반화된 차원

. 코흐 눈송이의 프락탈 차원 ; log4/log3 = 약 1.2618 차원 (도형의 확대율 3, 반복율 4) → 차원은 연속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무한하다.

. 유클레이데스 기하학 ; 곡률이 0인 경우의 기하학.

. 바슐라르 : 뒤의 이론이 앞의 것을 포함한다. = 일반화 ( 마르크스;프롤레타리아/ 푸코;어린이,광인,병자,동성애자,범죄자,여성,흑인,비서구지역 )

. 1차원이 완벽하게 주름잡히면 2차원, 2차원이 완벽하게 주름잡히면 3차원, ..

 

∮23 실재와 현실 사이

.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차이는?

. 유클레이데스 기하학 ; 자연 인식에 있어서 서구 정신의 핵심적인 징표

. 그리스 민족 ;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연역 체게를 구축할 줄 알았던 유일한 민족

. 동북아 문명 ; 형이상학과 기술만 있고 그 사이에 과학이 없다. 근대 이전의 실용 기술 문명을 말하면 중국을 따라갈 문명이 없다. 직관적인 형이상학이나 詩文에서도 마찬가지다.

. 플라톤의 수학 ; 감성적 차원과 형상적 차원의 중간에 위치

. 유클레이데스 ; 감각과 운동을 버리고 순수 도형들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를 구성(이데아 지향)

. 17세기 근대 수학 ; 시간 속에서 좌표 내에서, 형상의 세계를 버리고 운동성 재현 추구(무한소 미분;끝없이 움직이는 것, 매순간 변하는 것,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것, ‘극한으로의 이행’을 추구)

. 부르바키 학파 : 완벽한 연역 체계, 절대적으로 투명하고 순수한 간명한 수학적 개념 추구/ 구조주의적이고 형식적인 수학

. 만델브로 : 복잡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주장, 간명하고 투명한 그 무엇으로 환원하려하지 말 것. 라이프니츠 마니아 - 라이프니츠 ; “극히 작은 입자가지도 무한의 다양한 창조물로 가득 찬 세계로 간주해야 한다.”(反還元主義)

현대 이전의 서구 철학은 가시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을 나누고 가시적인 것을 부정. 무시해 왔다. 그러나 만델브로는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voir, c'est savoir).”

 

∮24. 인식론적 회귀

. 그리스-히브리적 세계관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 이 세계는 형상이 질료에 具顯된 세계다. 초월적 사유가 특징

. 코라 ; 플라톤-감성적 차원의 터

. 학문의 위계 : 1.형이상학, 2.수학, 3.천문학 4.생물학 5.역사학 (비가시적,법칙적 <---> 가시적,가변적)

 ‘법칙적’ 이라는 말 -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천문학 - 규칙적 현상/ 역사학 - 가장 불규칙한 삶

 ‘시각적’ - 눈을 더 필요로 하는 담론일수록 더 저급한 담론이라는 편견(과학사를 지배해온 고정관념)

       메이에르송 ; 파르메니데스 이래의 전통/

       과학의 이상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질적 多를 과학 법칙의 一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 현실을 이론에 갖다 맞춰 버리게 된다.(클로드 베르나르; 자연에 맞추기 위해 이론을 바꿔야지, 이론에 맞추기 위해 자연을 바구지 말라) → 19세기 ‘과학비판’ 담론 성행

. 베르그송 : 이 세계는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의 세계다. 과학은 이것을 사상해 버리고 그 추상적인 뼈대만을 잡아낸다. ‘attention' → 서구 과학과 형이상학은 늘 눈으로 보는 것을 무시했다./ 탈은폐의 밝은 빛 -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존재가 밝은 빛 아래에 드러난다. “Attention a la vie! 삶을, 이 세계 자체를 응시하라!” = 개념, 공식, 그래프로 환원하지 말고 몸 전체로, 영혼 전체로 이 세계를 살라!

 

 

8강. 기 - 의미

                                                                       발제 ; 남궁효 (2001.7.9)

§48 논의의 궤적

 

이정우 교수의 기본 정향 : 고전과의 연계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현대적 사유를 전개한다.

 

§49 ‘상(象)’의 의미

 

. 주역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상이다. 상의 개념만 정확히 파악하면 주역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 상(象)의 3가지 의미

1) 현상(現象) --- 나타나는 것, 드러나는 것 (ex.상형문자(象形文字)

 ▷ 見乃謂之象 形乃謂之器(上/11)

 나타나는 것을 상이라 하고 모양새를 갖춘 것을 기라 한다.

 

. 나타남, 드러남은 인간 주체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인식 주체에게는 똑같은 이 세상이 달리 나타난다. ‘세계’는 고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가 서로 교감하고 있는 지금 이 차원에서 성립하고 있다. 과학적 이론, 종교적 마음, 예술적 상상력도 결국은 이 세계를 지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 베르그송 이후의 현대 형이상학 - 현실 자체를 긍정, 밝게 보는 시각 제공

. 동북아 사유 전통 - 처음부터 象에 대한 강조, 삶의 준거는 상에 있다.

.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실재와 현실 사이에서, 인식론적으로 이미지, 지각, 사건의 층위에서 실재로 파고드는 고도의 형이상학 담론들에 이르기까지 담론 공간 전체를 보면서 사고해야 한다.

 

2) ‘본뜨다’

 닮아가다. 표상하다 → 8괘는 우주의 이법을 추상화한 일종의 표상 체계입니다./ 괘는 어떤 상황, 어떤 사태, 어떤 흐름에 내재하는 고도의 추상적인 운동구조를 뽑아내 준다.

 ▷ 分而爲二以象兩 掛以以象三 揲之以四以象四時 歸奇於력以象閏(상/9)

 나누어 둘을 만듦으로서 천지/음양을 본뜨고, [손가락에] 걸어서 삼재/천지인을 본뜨고, 4로 셈하여 춘하추동을 본뜨고, 나머지를 손가락에 끼워 윤달을 본뜨니...

 

→ 蓍草를 가지고 점치는 과정, 49개의 시초를 가지고 점을 치는데, 두손에 양분=천지,음양,건곤을 본뜬 것, 왼손 작은 손가락 사이로 걸어서 3=천지인을 상징(三才), 설(揲=세다) 4로서 춘하추동을 본뜬다. 륵(扐=왼손 2. 3指사이) 기(奇=넷씩 셈하고 남은 수)

 

3) 추상화된 수준의 사물의 뼈대

 ▷  聖人設掛觀象繫辭焉而明吉凶(상/2)

 성인이 괘를 세우심으로써 사물의 뼈대를 관찰했으며, 그에 풀이를 붙임으로써 길과 흉을 밝히고자 하셨다.(주역의 모든 것이 나온 문장, 괘의 설계, 상의 관찰, 풀이 붙임, 길흉을 밝힘)

 ▷  聖人有以見天下之賾而擬諸其形容象其物宜 是故謂之象 (上/8)

 성인이 계서 천하의 깊은 이치를 보고, 그 모양세를 본떠 그 법칙을 파악하니, 이를 가리켜 상이라 한다. [ 색(賾)-잡다,어지러움, → 세계의 근본 원리, 추상적인 구조 / 형용-인식 주체에게 변별되어 들어오는 모든 종류의 성질들/ 물의- 사물이 적절하게 존재하고 있는 바른 상태

이 때의 상은 일차적으로는 존재론적인 것이다. 상징이나 부호는 2차적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 현상의 존재론적 뼈대를 가리킴 → 그 중에서 가장 추상적인, 가장 상위의 뼈대=‘사상(四象)’이다.; 즉 사상은 기가 조직화되는 모든 양태들을 극단으로 추상화했을 때 나타나는 네 가지 유형(음양은 더욱 추상화한 것)(ex. 사상의학 - 체질론)

 

. 고대인들에게 ‘사물들의 깊은 이치’란 물질의 내부로 파들어갔을 때 발견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넓게 가져갔을 때 드러나는 세계의 조직화 양태이다. = 개별적 현상/사건들이 계열화되어 나타나는 고급한 형태의 상(象) (ex. 어떤 마을에 이사왔을 때)

. 고대의 이법(理法), 도(道), 깊은 이치 등은 어디까지나 사건들의 계열화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 상(象) - 개별적인 현상/사건으로부터 무수히 계열화된 구조들, 나아가 세계의 네 가지 커다란 구조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 그리고 그런 계열화의 부호, 상징을 가리킨다. 즉 존재론적 맥락과 인식론적 맥락을 함께 가리킨다.

 

§50. 기 - 의미로서의 상

 

. 태극, 음양, 사상 같은 이법들은 과학 법칙이 아니다. 고대의 문헌을 과학의 잣대에 맞춰 억지로 변호하려는 태도는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고, 오히려 고대 사유가 오늘날의 과학이 줄 수 없는 어떤 측면을 지니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고대’의 연구와 ‘자생적 탈근대’의 모색은 하나의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다.

. 문명/문화의 근원적 역설 ;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면 나중에는 그 무엇이 인간을 지배한다.

. 상(象)은 주객이 맞물려 있는 차원에서 성립하는 구조. 세계/기의 운동이면서 - 의미의 이중체, 구조화된 장(場)

. cf. 들뢰즈의 세계 『의미의 논리』-- 전(前)개체적이고 비인칭적인 장을 먼저 설정하고 그 위에서 개체, 인칭, 집합이 성립한다고 생각. 실재의 차원과 현실의 차원 양자를 생각하고 그 관계를 모색한다.

. 구조주의 ;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주체나 의미가 그 안으로 흡수되어 버림

. 자연과학 ; 주관을 배제함, 기본적으로 ‘객관’을 추구하는 담론임.

 

. 역(易)의 세계 ; 현실의 세계를 탐구하는 담론. 주관과 객관이 맞물려 있는 세계. 기의 운동이자 동시에 문화적 의미이기도 한 사건들로 충만한 세계, 이 세계를 다루는 것이 역이다. (ex 한의학)

. 이법(理法) ; 구조 자체가 이미 인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장, 기의 운동이자 의미가 이미 조직화되어 있는 장

 

. ‘인간적 의미’란?

▷ 是故吉凶者得失之象也, 悔吝者憂慮之象也, 變化者進退之象也, 剛柔者晝夜之象也. (上/2)

해서 길흉은 잃음과 얻음의 상이요, 회린은 근심과 걱정의 상이다. 변화는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요, 강유는 낮과 밤의 상이다.

. 잃음과 얻음은 사건 자체이다. 흉하다는 것은 잃음이라는 사건 아래로 파고 들어 갔을 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어 떤 계열의 매듭에 위치하는 가를 깨달았을 때 드러난다.(노인과 아들의 죽음) 

. 상이 드러내는 의미론적 구조는 ‘情’과 섞여 있는 구조이다. → 현상학과 친근성(메를로-퐁티), 그러나 현상학의 담론에는 서구 특유의 근대적 주체가 도사리고 있다.

. 음양이라는 두 대립적 양태가 부딪치고 있는 場 (剛柔相推而生變化) --- 들뢰즈에서 볼 수 없는 동북아 사유 특유의 구조(홈런타자와 투수, 응고와 기화, 삶과 죽음 등), (베르그송 ; 우주를 생명과 물질의 투쟁으로 파악)

§51. 괘, 효와 상

 

. 상은 존재론적 맥락을 기호화 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호화에 대해서는 괘와 효를 이해해야

▷ 聖人設卦觀象繫辭焉而明吉凶

괘는 세우는 것이고, 상은 보는 것이고, 풀이는 거는 것이고, 길흉은 밝히는 것이다.

▷ 聖人有以見天下之動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 繫辭焉 以斷其吉凶 是故謂之爻 (상/8)

→ 성인이 계서 천하의 움직임을 보아 그 회통을 관찰하고 그 전례를 행함으로써, 풀이를 붙이고 그로써 길흉을 판단하니 이를 가리켜 효(爻)라고 한다.

 

‘회통’ = 우주의 모든 계열화들이 정합적으로 조직되어 형성되는 우주의 대이법. ‘전례’ =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규범. ‘천하지동’은 자연의 움직임과 세상사를 포괄하는 말. “효란 천하의 움직임을 본뜬 것이다.(爻也者 效天下之動者也)”(하/3)   64괘와 384효는 모두 세계의 움직임을 표상한다.

. 6효를 쓰는 이유 - 천지인(삼재)을 두 번 겹친다. (六爻之動 三極之道) 상/2  하늘, 땅, 사람 × 음양

 

▷ 八卦成列 象在其中矣(하/1)

  팔괘가 열을 이룬다는 팔괘가 모여 자기 자리를 잡고 이것이 곧 만물이 회통을 이루어 우주 전체를 표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계의 의미론적 구조인 象이 그 가운데 있게 된다.

팔괘 - 건,  태, 리,  진,   손,  감, 간, 곤

      하늘, 못, 불, 천둥,, 바람, 물, 뫼, 땅     (335쪽 참조)

. 괘와 효의 구조는 진정 우주의 전체를 표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역의 체계를 버릴 것도 없다. 긍정적인 태도로 선용해야

 

▷ 八卦以象告 爻彖以情言(하/2)  팔괘는 상으로써 고하고, 효사와 단사는 정으로T서 말한다. 여기 정=情況

▷ 剛柔相摩 八卦相盪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 르네 톰식으로 말하면 현실 세계에서의 구조-의미적인 형태변이인 것이다. ‘팔괘상탕’

팔괘가 상탕하는 무수한 인연의 실타래들이 얼키고 설켜서 무심히 뱉은 한마디 말이 어느 날 갑자기 독화살이 되어서 날아오기도 하고, 오래 전에 베푼 작은 정성이 어느날 갑자기 큰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겪는 사건들은 의미 복합체들의 ‘울림(鼓)’과 ‘적심(潤)’을 통해 어느 순간에 우리 삶의 현실 속으로 솟아오른다.(운명)

 

§52. 태극, 기, 의미

 

§46에서 태극 = ‘우주를 구성하고 또 이끌어 가는 특이점들의 총체’로 규정, 음과 양은 ‘태극의 두 양태’로서 특이점들이 계열화되는 양태.

. 이법이라는 논리적 존재와 기라는 물질적 존재를 잇는 작업은 우주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힘(생명)이라는 개념이다.

. 자연과 문화를 이어주는 작업이 철학이다. 그 경계선에 의미가 있으며, 철학은 그것을 캐는 작업. 철학은 추상적 논리/이법의 차원과 물질/기의 차원, 그리고 인간과 문화의 차원을 어떻게 이어서 세계를 보다 총체적으로 볼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담론이다.

. 태극/리/특이점 = 조직화의 원리 (힘은 기에 귀속된다.) ∴ 퇴계의 ‘理發’은 성리학사의 이단이 될 수 밖에 없었다.

. 기의 수준을 잠재적 특이성들을 현실화할 수 있는 범위로 규정할 수 있다. 크게 나누어 물체의 기, 생명체의 기, 인간의 기로 나눌 수 있다.

. 특이성들을 현실화할 때 그 계열화의 양태가 두 가지로 나뉜다. = 음/ 양의 양태

. 라이프니츠의 힘 : 본래적-능동적 힘 = 영혼, 완성태, 형상/ 영혼=특이성들의 집합, 이를 펼치는 힘도 영혼 자체 내에 들어 있다.(자생성) --- 관념론적 사유

. 동북아 사유 -- 유물론적 성격, 관념론/유물론의 범주 보다는 초월적/내재적이라는 범주화가 낫다.

 

. 기가 특이성을 하나씩 실현할 때마다 그 결과는 우리 삶의 표면에 사건/현상으로서 나타난다. 그 때 그 나타남을 알아보는 것은 바로 그 특이점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기의 운동에게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그 읽어 내는 주체 자체의 수준과 상관적이다. 유독 인간만이 자신이 실현시킬 수 없는 특이성을 알아봅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잠재적으로 기의 모든 특이성이 들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인줄 알았던 현실화를 이룩(비행기, 잠수함)

 

. 기의 움직임은 문을 여닫음으로써[一闔一闢] 일정한 條理를 갖추게 되고, 그 지도리 하나하나가 의미로서 성립합니다. 그리고 존재 자체의 지도리들과 그 지도리들을 알아보는 주체의 지도리들이 상응하게 됩니다. 따라서 의미들의 총체는 이미 특이성들의 하늘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들은 기의 운동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결국 세계는 태극-의미와 기의 결합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9강. 대아(大我)

 

§53 정황의 풀이

 

역에서의 ‘접힘과 펼쳐짐’은 라이프니츠나 현대과학에서처럼 수직적 주름/표현(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 사이의 접힘과 펼쳐짐)이라기 보다는 현실 자체의 수평적 주름/표현이라는 사실을 앞장에서 설명.

여기서는 역에 함축되어 있는 행위론, 가치론을 검토하면서 갈래 개념, 자연과 인생의 관계, 그리고 대아의 길, 무위이의 길에 대해서 ...

 

§54 갈래

 

계열은 길입니다. 길 이외에 갈래라는 개념을 도출

辯吉凶者 存乎辭 憂悔吝者 存乎介 (상/3)

길하고 흉함을 논변하는 일은 말에 있고, 주저하고 뉘우치는 일에 힘들어하는 일은 갈림길에 있다.

 

‘우회린자’는 주저하고 뉘우침을 힘들어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복잡 매듭에 처해 있을 때입니다. 그것은 바로 ‘介’입니다=갈림길 ---> 수학의 급변점.  이런 경우가 바로 정황/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사건-의미 계열을 풀이하는 것= 辭

 

§55 자연과 문화

 

이런 길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양태가 바로 음과 양이다.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 善也, 成之者 性也. 仁者見之 謂之仁, 知者見之 謂之知. 百姓日用而不知 故君子之道鮮矣 (上/5)

한편으로 음이라 하고 한편으로 양임을 도라 한다. 이를 잇는 것을 선이라 하고, 이루는 것을 성이라 한다. 어진이는 이를 보고 어질다 하고, 아는 이는 이를 보고 아는 것이라 하나, 대중은 매일매일 쓰면서도 알지 못하니 군자의 길은 드물다.

 

. 철학적 사유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자연-인간 위상학입니다. 인간의 가치, 행위, 문화 등이 자연과 연속적인가/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불연속적인가/이어야 하는가의 문제. ‘잇는다’(繼)는 것은 동북아 사유가 자연과 인간을 기본적으로는 연속선상에서 본다는 것을 말한다. 그 연속성이 완성된 궁극적 상태를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한다.

. 전통 사유와 근대 사유를 구분해 주는 뚜렷한 분기점이 바로 이 연속성의 파괴입니다. 근대 사유는 이런 연계를 끊어버리고 더 이상 형이상학적 근거를 거절하고 이성에 근거하게 됩니다. 인간 이성이 가진 객관성, 보편성, 합리성 등에 호소합니다. 존재/자연은 ‘물질’로, ‘대상’으로 전락하고 인간 자체 내에서 근거를 찾습니다. 현대 사유는 바로 이러한 근대적 이성의 객관성, 보편성, 합리성이 허구적임을 폭로하면서 시작됩니다.

. 성(成) --- 이룬다. : 도는 성(性)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의 도 = 현실적으로 성)

            완성한다 ; 도는 그 완성태에서 성이 된다. (도 = 잠재적으로 성 )

 성(性) --- 이성(理性) ; 인의예지 같은 본질덕인 덕목

            본성(本性)  ; 돈, 권력, 쾌락 (우리들의 이야기와 관심 영역)

본성을 넘어서는 씨앗 = 성인(聖人), 성불(成佛)의 씨앗 = 동정심, 정, 사랑...

이러한 감정적 씨앗이 이성의 수준으로 완성되어야 도덕이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