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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지와 순교자

김대건 신부의 가계족보

영강풍음 2021. 7. 8. 15:36

김대건 신부님의 가계족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 2002년 9월 15일,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나신 솔뫼에서 김신부님 집안 신자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김해김씨 안경공파’에서 분리 독립하여 ‘천주교성인공파’를 창립했습니다. 천주교성인공파의 파조로는 김진후 비오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김진후 비오와 김대건 신부님은 어떤 관계일까요? 인터넷 상에서 검색을 해보면 김신부님의 고조부라 하는 곳도 있고, 증조부라고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신부님의 가계족보를 들여다보면 김진후 비오는 김대건 신부님에게 증조부가 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1739년에 태어난 김진후 비오는 슬하에 4형제(종현, 택현, 한현, 희현)를 두었는데, 이 형제들 중 둘째 택현에게서 제봉, 제린, 제철 3형제가 태어나는데, 둘째 제린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의 부친 되시는 제준 이냐시오입니다. 제준 이냐시오에게서 지식과 난식이 태어나는데 지식이 바로 김대건 안드레아이고, 난식 방지거는 김대건 신부의 동생 되는 분이십니다.

    

김진후 비오의 족보상 이름은 ‘운조’로 되어 있으며, 김진후 비오가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아들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현, 택현, 한현, 회현 등이 차례로 입교했지만 관직에 있던 운조는 입교를 미루다가 50세 이후 1788년에 ‘비오’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차례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는데, 마침내 1805년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된 후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814년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교하시게 됩니다.

    

김택현은 김대건 신부님의 조부가 되시는 분으로,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의 형님의 딸 인 멜라니아와 혼인하여 제봉, 제린, 제철 3형제를 낳으셨는데, 고향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27년 정해박해 때 가족을 데리고 서울 청파동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후에 경기도 용인 한덕골 신자촌으로 피난하여 글방훈장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1830년 잡혀가 매를 많이 맞고 풀려난 후 산중에서 헤매다가 돌아가셨다 합니다.

-제린->제준 이냐시오(김대건의 아버지)

-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의 아들이 한국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임을 볼 때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진외가 사촌간이 된다.-

    

김제린(제준 이냐시오)은 김대건 신부님의 부친이 되는 분이신데, 택현의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셨습니다. 1835년경 박해를 피해 고향 솔뫼를 떠나 경기도 용인 땅 골배 마실에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아버지 택현이 죽은 후 김제준은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농사지으며 살던 중, 서양 선교사가 정하상의 집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거기서 샤스탕 신부님을 만나 ‘이냐시오’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후에 은이 공소에 와서 회장직을 맡아 교우들을 돌보았습니다. 그 후 1836년 나 모방 신부님이 남부 지방에 가는 길에 은이 공소를 들러서 15세 된 아들 지식(대건 안드레아)을 간택하여 마카오로 신학수업을 보내게 됩니다. 나중 이 사실이 드러나 중죄목이 더해져 심한 고문을 받게 되자 신앙이 흔들렸지만 신자들의 훈계를 듣고 뉘우친 후 마침내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 그의 나이 44세였습니다.

    

그 다음 난식 방지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난식 방지거는 형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후 어머니 고 우술라를 모시고 경기도 용인 골배 마실에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1864년 모친이 돌아가시고 이어 부인 안동김씨 마저 죽은 후,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미 큰집 형제들이 가서 살고 있는 전라도 정읍 산내면 먹구리에 가서 혼자 살다가 1873년 자녀 없이 죽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 안동교구 신자들이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진후 비오의 셋째 아들 한현이라는 분이 우리교구 지역 일월산 골짜기 우련전에 와서 신앙생활하다가 영양 머루산과 청송 노래산 교우들과 함께 잡혀가 순교하신 김종한 안드레아이며 그분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의 종조부가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김학록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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